Stage -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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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가 지금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 만들지만 1950년대에는 세계 정상급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 선봉에는 구로사와 아키라가 있었다. 고전 영화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든 조지루카스 감독과 블록버스터 영화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대부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그의 광팬이라는 사실을 보면 구로사와의 영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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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구로사와 아키라가 '라쇼몽'을 만들었을 때까지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회고록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연대기 순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의 유년기 시절 이야기다. 자서전을 읽기 전까지 나는 구로사와 아키라가 독재자 같은 폭군 감독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고집을 많이 부렸다는 일화들 때문이거나, 몸집이 그 시대 사람들답지 않게 180cm가 넘는 거구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왠지 험악해 보인달까…. ᄏ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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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의 유년 시절은 지극히 여성스러웠다. 감성적이고 연약한 면이 있었다.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같은 반 아이들에게 매일 놀림당하고 울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를 강하게 키워준 사람은 그의 형이었다. 지금 말로는 츤데레 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를 궁지로 몰아넣는 듯하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도와주면서 그를 한 단계 성장하도록 만들어줬다.

 

그를 강하게 키워준 또 하나의 인물은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군인 출신으로 엄격한 면이 있었다. 그에게 검도를 배우게 하고 시골 오지로 보내 적응하게 했다. 시골 오지에서의 스토리도 흥미진진한데 당장 만화로 그려도 되겠다 싶을 만큼 흥미로운 것도 있었다.

 

이렇게 구로사와의 남성성을 강하게 키워준 사람이 형과 아버지였다면 여성적 감수성을 키워준 사람은 막내 누나였다. 책에는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약간 신세경을 닮은 외모로 상당한 미인이었다. 구로사와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공기놀이도 같이 해주는 사이였다고 한다. 슬프게도 막내 누나는 16세에 일찍 요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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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자서전 비슷한 것'의 진행 방식은 연대기 순이면서도 자신의 성장에 발화점을 만들어준 사람들과 만남 순이기도 하다. 늙어서까지도 걱정이 되게 만드는 친구인 우에쿠사 게이노스케, 구로사와가 감독의 소양을 쌓는 데 엄청난 도움을 줬던 멘토 야마모토 가지로 감독과의 일화들은 그 자체로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미후네 도시로와의 만남도 인상 깊었다. 미후네 도시로는 할리우드에서도 아주 유명한 배우인데 특유의 남성적인 마스크와 마초적인 연기가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자서전은 한편의 성장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었던 감독답게 글도 참 재미있게 잘 썼다.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이 나도 이 사람처럼 자서전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솔직하게 자신의 모든 걸 쓰는 게 자서전이겠지마는 뭐랄까... 인생의 면면을 꿰뚫어 보는 통찰을 갖는 글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연륜이 있어야 하고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이 책에서는 그런 거장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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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난 후 7인의 사무라이를 다시 한번 봤다. 3시간 30분이고 흑백에다가 고전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재미있었다. 최근에 개봉하는 영화들보다 훨씬 재미있는 고전 영화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렇게 오래오래 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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